- 언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밴드: ‘Oasis’가 살아남은 이유
‘오아시스’의 길은 ‘블러’가 1990년대 초 미국 신인 밴드와 경쟁하며 걸었던 길과는 달랐다. Oasis는 그런 불필요한 과정은 생략하고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자신의 그림을 그렸다. 영국에서 타이밍 좋게 성공한 밴드가 있다면 ‘Oasis’를 언급해야 한다. 대서양을 건너면서 우리 음악이 이처럼 새롭다는 표현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천천히 음반시장을 잠식해 들어간 희귀한 경우에 속한다.
타이밍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이라고 할 수 있다. ‘오아시스’가 올라온 1990년대 중반은 영국 그리고 미국 내에서도 인기 있는 밴드와 이를 중심으로 라인업이 이미 형성돼 있었다. Oasis도 <Rock>의 사막화를 막기 위한 대표선수가 됐다. 이 현상은 영국에서는 The Beatles의 재등장과 맞물리게 됐다.
Oasis-Wonderwall
길들여지지 않은 ‘The Beatles’의 1990년대 버전은 스타성을 겸비한 재능 있는 ‘Liam Gallagher’로 완성된다. 이후 ‘놀러지’가 명성을 얻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고, 그때까지 필요한 시간을 동생이 벌어준 특별한 경우였다. 어쨌든 그 복잡한 티키타카로 형성된 여러 이슈는 1990년대 말까지 언론에 오르며 이들의 위상을 높이는 주요 동력이 된다.
<Punk> 혹은 <Blues>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목한 ‘Oasis’는 일종의 문화 현상으로 ‘로큰롤’이라는 다소 포괄적 의미의 단어와 결합하게 된다. 비록 낡았다고 평가할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도 청자를 밴드의 음악으로 이끄는 동력이다. 그 힘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1990년대의 ‘티키타카’에 자칫 한정되는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Oasis-Some Might Say
- 왜 ‘왼쪽’에서 설명해야 하는가?
‘Oasis’는 ‘노동당’을 대표하는 제스처를 바탕으로 언론 그리고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국가 차원에서 영국도 왼쪽으로 가는 밴드가 있음을 밝힌 시대다.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루어진 작업을 즐겼다고 표현하고 싶다. 미국에서는 당시 펄잼이 왼쪽을 대표했기 때문에 영국에도 있어야 했다. 경쟁을 위한 자연스러운 펌프와 이를 따르는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 같다.
Pearl Jam-Spin The Black Circle
물론 정치적이라고 아무도 노골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설명하기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각을 재고 들어가기에 딱 좋은 소재였다. 실제로 바다를 건너 들어온 한국에서는 노동당을 대표하는 이른바 민중 가수 느낌의 문구로 둔갑할 정도였다. 마케팅 이슈를 생산하는 밴드로 봤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Oasis-Live Forever
바로 이슈메이커라는 점에서 ‘오아시스’는 ‘블러’에 비해 좀 더 관심을 끌 수 있었다. ‘Oasis’를 단순히 음악만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서술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 시작은 <Definitely Maybe>가 될 것이다. 밴드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1995년이 되기 전 이들의 가능성을 알던 시절이다.
아직 <파클라이프>가 우세를 점하고 있더라도 언제나 게임을 재미있게 하려면 1위의 독주 대신 2위의 추격이 필요했다. 단숨에 <Parklife>에 명함을 내민 <Definitely Maybe>는 가능성을 판매량으로 입증했다.
Oasis-Whatever
1995년 ‘Wonderwall’의 시작은 ‘Oasis’를 영국 밴드로 한정하려던 많은 이들의 고정관념을 깬 순간이다. 이어진 히트곡 ‘Don’t Look Back In Anger’가 등장하며 처음으로 영국식 팝송의 글로벌 히트를 체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익숙한 영국의 전설 ‘The Beatles’가 다시 등장한 것은 일종의 정해진 절차였던 것 같다.
<Be Here Now>는 짧은 시간의 마침표 같은 앨범으로 서술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Oasis’ 입장에서는 절정의 순간을 즐기며 팬들을 위해 제공한 서비스 같았던 앨범이다. ‘존 레논’을 계승한 등 여러 수식어가 따라왔지만 ‘리암’의 행동은 앞으로 자유로웠다. 그는 고인의 단물을 직접 흡수하지 않아 그리 한가로운 스타일이 아니었다.
1990년대 스타들의 전쟁은 뮤지션들의 갈등, 그리고 함께 그림을 그린 언론 플레이가 있었기 때문에 재미있는 이슈가 될 수 있었다. 미디어라면 우리가 모호하게 쓰는 평단의 위치가 중요했던 시절이다. 그렇게 전성기를 구가했던 음반산업은 패러다임의 고착화를 알면서도 유보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시절을 즐기고 있었다.
‘Oasis’는 그 빛나는 순간에 최전선에서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했던 자유분방한 밴드였다.
Oasis – The Girl In The Dirty Shi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