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투보 – 박애진 필리핀 클락

▲ 화산이 가져온 독특한 경 본다=1991년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했다. 거대한 화산재가 쏟아지는 그 주변 지역에 큰 피해가 났다. 다행히도 세월이 흐르고 상처를 덮고 새로운 싹을 길렀다. 필리핀 정부는 미군 부대가 주둔한 클락을 특수 경제 구역으로 지정하는 비즈니스 중심지인 관광 도시로 변모시켰다. 하면 화산이 만들어 낸 독특한 자연 경관을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피나투보 화산 트레킹은 클락에서 꼭 1순위로 꼽히는 액티비티다. 아무리 게으른 여행자라도 트레킹 실시 당일만큼은 부지런히 새벽부터 움직여야 한다. 오전 7시까지 산 아래 체크포인트로 등록해야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화산으로의 첫 여행은 사륜구동 지프를 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체크포인트에서 트레킹 코스까지 용암이 지나간 곳을 달린다. 울퉁불퉁한 땅에 온몸이 흔들리고 백사풍이 수시로 불어온다. 물이 흐르는 구간에서는 바퀴가 모두 멈춰도 전진하는 수륙양용차를 방불케 한다.

불안과 불편함에 익숙해지려다 보니 비로소 대자연의 스케일이 눈에 들어온다 칼로 자른 듯 잘린 산자락과 색이 다른 지층의 단면, 신비로운 물결 모양의 지표면 등 화산 폭발을 남긴 상흔이 그대로 보인다. 1시간 반을 뛴 탓에 엉덩이가 아프다고 할까 허리까지 시큰거릴 무렵 트레킹 코스 입구에 도착한다.

트레킹 구간은 약 2km로 돌길과 언덕이 이어지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 화산 폭발 후 피나투보 산 정상에는 커다란 분화구가 생겼고 빗물이 고여 거대한 칼데라 호가 형성됐다. 둘레 2.5km에 이르는 에메랄드빛 호수가 빚어내는 반영은 장관이다. 장대하고 호쾌한 풍경 앞에서 그동안 받은 흙먼지와 온몸의 쑤시는 일은 깨끗이 잊는다. 긴 계단을 내려와 호숫가에 서면 감동이 밀려온다. 피나투보의 거친 피부를 본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대자연의 선물이다.글과 사진 박애진(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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