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범’ 누구야? 대구 지하철 참사

대구지하철 화재 2003년 2월 1일 8일 참사

●●●총체적 안전불감증, 수백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최악의 화재참사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 정차했다.

1079호 열차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열려 있는 문으로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불은 순식간에 객차 의자와 벽면으로 번지고 검은 연기와 유독성 가스가 지하 3층 승강장과

지하 1, 2층 대합실로 확대됐다.

운전사가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했지만 열량이 부족했다.

운전사는 소화기를 버리고 그대로 역을 나섰다.종합사령실에 보고도 하지 않은 채였다.

열차에 타고 있던 40대 남자가 처음으로 화재 신고를 했다.

3분 뒤 맞은편 선로에서 1080호 열차가 중앙로역으로 진입했다.상황을 잘 몰랐던 종합사령실은 화재가 발생하자

조심조심 진입하라는 지시만 내렸다.

검은 연기로 주변 상황과 불꽃을 볼 수 없었던 기관사들은 열차를 멈추고

자동적으로 출입구가 열렸다.

객차 안에 연기가 콸콸 쏟아지자

기관사는 곧 문을 닫고 출발하려 했지만 하필 그때 전기가 끊겼다.

사령실에서는 안내방송을 하라는 무책임한 지시만 내렸고 기관사는 곧 출발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방송을 했고,

연달아 전기를 공급하려고 했다.

그렇게 약 1분이 지나는 동안 옆 열차에서 불이 옮겨 붙어 있었다.

1080호 열차가 중앙로역에서 멈춘 지 6분쯤 지난 오전 10시 2분.

사령실은 승객들을 대피시키라고 했고 기관사가 열차 출입문을 열었으나

불이 옮겨 붙은 탓에 열리지 않는 출입문이 많았다.

승객들은 수동으로 문을 여는 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전 10시10분 1080호 기관사는 사령실의 지시에 따라 전동차의 마스터 컨트롤 키를 제치고 탈출했다.

운전사가 마스터 컨트롤 키를 뽑자 열차 내 모든 조명이 꺼졌고 그나마 열려 있던 객실 문이 모두 닫혔다.

많은 승객들이 암흑색 객차에 슬그머니 그대로 탑승해 버렸다.그리고 두 열차는 맹렬한 불길에 휩싸였다.

오후 1시 38분 열차 뼈대만 남긴 채 화재가 진화돼 곧 엄청난 인명피해의 참상이 드러났다.

이 사고로 192명이 목숨을 잃었고 151명이 다쳤다.

1080호 열차에서만 142명이 사망했고 정전으로 승강장을 빠져나가지 못한 희생자도 많았다.

사람들이 미처 빠져나오기도 전에 지하 1층 지하상가의 방화 셔터를 내리는 바람에 희생자가 더 늘었다.

대부분의 희생자는 유독성 가스에 질식사하고 열차 내 희생자는 질식해 사망한 후 고온의 불꽃으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엄청난 인명피해에 온 국민이 충격에 빠져 하나씩 밝혀지는 참사의 원인에 모두 분노했다.

이어진 대구광역시와 대구지하철공사의 대응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 2시간 만에 열차에 불을 지른 범인이 검거됐다.

범인은 지적장애 2급인 50대 남성이었다.뇌졸중으로 인한 지체 장애나 심각한 우울증 등에 의한

정신 장애를 안고 있던 범인은 휘발유를 구입해 지하철을 타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는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하다 2004년 8월 숨졌다.

기관사·역무원·관제사 등은 금고 5년~1년 6월의 형사처벌을 받았다.

사건을 축소 은폐하고 사고 다음날 사체와 유류품 수습이 끝나지 않은 승강장과 대합실을

물청소를 해 현장을 훼손한 대구광역시와 대구지하철공사 관계자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 사고가 엄청난 참사가 된 원인은

허술한 대응 매뉴얼과 관계자의 직무 태만, 판단 실수, 객차 내 불량 자재 사용,

승강장 내 화재 대비 시설 미비 등 안전과 관련된 모든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사고 후 전국 지하철 내 모든 소재가 불연재여서 출입구의 수동 개방 방법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안내했다.

승강장에는 정전 대비 야광유도표지판이 설치됐고 화재용 방독면도 설치됐다.

지하철공사의 비상대응 매뉴얼도 개선되었다

물론 방독면의 수량은 승객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대형 지하철역이나 환승역은 너무 깊어

통로가 복잡하고 비상시 탈출이 쉽지 않다는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대부분의 역이 지하에 있기 때문에 다량의 유독 가스가 발생하는 경우에도 치명적이다.

이 사고의 부상자는, 화상과 유독가스에 의한 후유증으로 아직 고생하고 있으며, 직·간접적으로 사고를 겪었다.

많은 대구시민은 지금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사고 유족을 중심으로 설립된 ‘2·18 안전문화재단’은 트라우마 치유와 안전문화 교육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대구 중앙로역에는 사고 당시 그을린 기둥과 벽체, 녹은 물품을

그대로 전시되어 있는 추모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그리고 한쪽에는 희생자의

이름과 출생연도가 새겨진 추모벽이 있다.

출처_(저서)어제의 오늘 대한민국 편

홍길동, 신창원에 대해 조사하자 1997년 1월 20일 무기징역수 신창원에서 탈옥하다 ●●● 무기징역수 탈옥, 2년 6개월 도피행각 1997년… 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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