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은 기자 2018년 12월 19일 15:50:05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전통미디어와 뉴미디어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는 시대. 이제 기업도, 정부도 스스로 미디어가 돼 언론이라는 매개자를 통하지 않고 직접 소통에 나서고 있다.
흔히 말하는 명품 저널리즘이 기업 홍보 전략의 핵심이 된 지 오래다. 스스로 미디어가 된 기업들은 독자적인 뉴스룸을 만들어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일찌감치 뉴스룸을 선보인 삼성전자 외에도 현대차그룹, 현대카드, 포스코, SK이노베이션, 풀무원 등 다수의 기업이 자체 뉴스룸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기존 그룹 공식 블로그를 확대 개편한 ‘HMG 저널’과 함께 영상 중심의 ‘HMG TV’를 선보였다. 단순히 홍보자료뿐만 아니라 미래기술, 라이프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현대차는 페이스북, 브런치, 유튜브, 카카오TV 등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소셜미디어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포스코도 4월 사외 블로그 운영을 종료하고 포스코 뉴스룸을 열었다. 보도자료 배포는 물론 특정 사안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 발표 등이 모두 뉴스룸을 통해 이뤄진다. 최근 포스코가 민주노총 계열 노조 간부를 해고한 사실도 뉴스룸을 통해 알려졌다. 7월 문을 연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뉴스룸은 업계 트렌드와 이슈 분석, 회사 내부의 다양한 소식을 전하고 기자들의 행사 및 현장 취재 신청도 이곳을 통해 받는다. SK이노베이션도 지난달 전문 보도채널 사이트를 열고 기업 뉴스와 사회공헌 소식 등을 전하고 있다.
원조격인 삼성전자 뉴스룸은 페이스북 페이지 팔로우만 320만명에 달할 정도로 영향력 면에서 압도적이다. 삼성전자 뉴스룸이 제작하는 기획기사와 멀티미디어 콘텐츠는 대부분 언론사 수준을 웃돈다. 구글에서는 아예 뉴스로 분류된다.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에 따르면 “삼성전자 뉴스룸을 거쳐 인용되는 기사는 연간 수천 건”이다. 삼성은 올해 말까지 총 45개국에 29개 현지법인이 운영하는 뉴스룸 웹사이트를 개설해 ‘글로벌 뉴스 네트워크’로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뉴스룸을 명실상부한 기업 스토리의 산실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뉴스룸이 제공하는 것은 단순 보도자료가 아니라 ‘스토리’다. 기존에는 홍보실에서 보도자료를 뿌리고 언론이 게이트 키핑을 거쳐 보도 여부를 결정하거나 의제 설정을 했다. 때문에 기업의 홍보 업무는 언론과 기자를 잘 ‘관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그런데 이제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내용과 형식까지 기업이 직접 결정하고 관리한다. 중간 전달자인 언론을 통하지 않고도 소비자(고객)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언론 패싱’이라며 항의하는 기자들과 홍보실이 마찰을 빚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실에서 주도한 페이스북 생중계 등을 두고 출입기자단이 “취재 역차별”이라며 항의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이제는 기자들도 달라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가는 분위기다. 현대카드 홍보실 관계자는 “기자들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며 “뉴스룸 콘텐츠를 기사로 활용하고 의견도 나누면서 양방향 소통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지의 한 기자도 “취재가 쉽지 않은 내부 뉴스나 CEO 움직임처럼 보도자료에 없는 내용이 있어 참고가 된다”고 말했다.
달라진 것은 기업만이 아니다. 정부도 디지털 시대에 맞춰 직접 소통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는 올 들어 잇따라 디지털 소통팀을 신설하고 기존 언론 대응 업무 외에 디지털 채널을 통한 정책 직접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현정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언론의 독과점 시대가 이미 끝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 형태가 뉴스인지 아닌지를 떠나 수용자가 원하고 가치 있는 정보를 생산하는 개인이나 기업이라면 하나의 매체로 인정받고 성장할 수 있는 시대”라며 “모든 것은 수용자에게 달려 있다. 언론이 기존에 갖고 있는 기득권을 통해 의제를 설정하고 언론의 역할만 주장하기보다는 가치 있는 정보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고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