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한국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지 2년 만인 2005년 4월 25일 오전 9시 19분 일본에서 승객 700여 명을 태운 JR 서일본 후쿠치야마 선 급행 열차가 탈선하여 10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이 사고로 전체 7량 전동차 중 4량이 레일을 이탈했고 기관사가 탄 선두 차량은 인근 건물 1층 필로티 안으로 들어가 주차된 차량과 함께 무너졌다. 2호차는 건물 아파트 모서리에 부딪혀 3, 4호차와 함께 얽히고 말았다. 대부분의 사망자는 1, 2호차에서 발생했으며 99명이 사망했다. 1년 뒤 열차사고 추모행사에서는 기관사를 제외한 106명만 명단에 올랐다. 기관사의 과실로 사고가 발생했다며 그는 제외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고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조직 전체의 문제였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과속이었다. 제한속도가 시속 70km인 곡선 구간에서 116km로 달렸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관사는 곡선 구간에 과속으로 진입했고 비상 브레이크도 사용하지 않았다. 열차 속도를 파악해 제한속도 이상이면 자동으로 감속시키는 자동열차 정지장치(ATS-P: Automatic Train Stop with Patterns)도 설치되지 않았다. 이미 사망한 23세였던 기관사의 법의학 검사 결과 그는 음주나 약물중독 등 신체적으로 어떤 의학적 특이사항도 보이지 않았고 정신적으로도 정상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위험구간에서 왜 규정속도보다 46km나 초과해 과속운전을 했을까.
사고를 낸 기관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0년 JR 서일본에 입사해 시험에 합격해 2004년 기관사가 됐다. 사고 당일 그는 아침 출발역에서 이미 15초 늦게 후쿠시마선 통근열차 운행을 시작했다. 사고 발생 직전 역인 아타미역에 진입했을 때는 무려 정시보다 34초 초과한 상태였다. 전동차는 정차해야 하는 이타미역을 그대로 통과해 72m나 오버런(Overrun)한 뒤 자동정지시스템(ATS) 작동으로 간신히 멈춰섰다. 기관사는 후진해 3m 더 뒤로 갔다가 다시 앞으로 주행한 뒤에야 열차를 정지시킬 수 있었다. 갑작스런 상황에서 운전기사는 몹시 초조해 하고 있었다. 열차가 이타미역을 출발할 무렵, 시간은 벌써 1분 20초나 늦어지고 있었다. 기관사들은 지연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직선 구간에서 시속 125km까지 속도를 높였다. 이타미역의 다음 역인 아마가사키역을 1.4km 남겨둔 곡선 구간에 진입해 기관사를 제동했으나 열차가 시속 116km까지 떨어질 무렵 열차는 레일을 이탈해 튕겨 나갔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1분 20초라는 짧은 지연시간을 만회하기 위한 운전 결과였다. 일반인이 생각하기에는 1분 20초는 크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JR 서일본에서는 매 운행마다 초단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JR 서일본의 열차 운행 정시는 매우 정확해 찬사를 받았지만 JR 서일본은 열차 운행 시간을 초 단위로 점검하며 기관사를 압박했다. 당시 회사 측이 정해 놓은 이타미역의 정치시간은 15초였다. 기관사가 정확한 운행시간을 지키지 못할 경우 강력한 징계가 뒤따랐다. 징계는 해고, 면직, 인사고과 감점, 성과금 감액, 교육훈련 등으로 구성됐는데 교육훈련은 말이 좋고 교육훈련이지 일종의 벌에 가까웠다.
기관사는 한 달에 10만엔 정도의 운행수당을 받지만 운행 지연과 오버런의 경우 5만엔 감액이 이뤄졌다. 사고 기관사는 2004년 이미 오버런으로 인해 5만엔의 성과급 수당이 감액됐으며 당시 13일간 교육을 받고 승무정지 처분도 받았다. 교육훈련은 징계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럽기로 악명이 높았다. 역사 내 독방에서 하루 종일 실수에 대한 반성문을 작성하거나 운전교본, 취업규칙 등을 복사시켜 화장실 출입마저 보고해야 했다. 관리자들은 제출한 내용을 비난하거나 인신공격에 해당하는 모욕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2001년 8월에는 전동차 전원 문제 때문에 1분 지연 운전을 했다는 이유로 5일간 일근 교육을 받은 기관사가 자택에서 자살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당시 일근교육을 함께 받은 동료에 따르면 사고를 낸 신입 기관사는 일근교육 후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 신입 기관사의 꿈은 신칸센 기관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그동안 누적된 벌점에 사고 당일 일어난 감점 사항이 합쳐지면서 그의 꿈은 멀어져 갔다. 사고 직전 속도를 신속하게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비상 브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 브레이크를 사용한 이유도 계속되는 벌점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탈선 사고 현장

사고 당시 2호차 내부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