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시카고 무대보다 낫다’ 뮤지컬 배우 최정원 ‘정작’

“살인도 엔터테인먼트예요”

이 대사로 압축되는 뮤지컬 시카고는 1920년대 범죄도시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유쾌한 블랙코미디다. 요즘 막장 드라마 뺨치는 불륜과 배신, 살인이 난무한다. 국내 초연부터 이 뮤지컬과 함께한 배우 최종원(52) 씨는 현실은 시카고 무대보다 낫지 않느냐며 어느 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뤄 공감을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카고는 오페라의 유령과 함께 브로드웨이 최장 뮤지컬 역사를 쓰고 있다. 국내에서도 2000년 초연 이후 거의 매년 공연되고 있으며 16번째(국내 포함) 공연이 2일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막바지 연습 중인 뮤지컬 1세대 배우 최종원을 만나 시카고의 롱런 비결부터 알아봤다. 서양식 정원놀이 같아요. 마지막 전환 없이 무대 위에서 화술로 놀아요. 배우의 실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품이에요.”

그는 내연녀를 살해한 록시 하트 역으로 두 번, 바람난 여동생과 남편을 총으로 쏴 죽인 벨머 켈리 역으로 열 번 시카고 무대에 섰다. 록시에서 벨마역으로 갈아탈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극중 벨마는 더 젊고 섹시한 록시에게 인기를 빼앗긴다. 록시 하트’가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제 팬클럽 이름이 ‘록시 하트’였어요. 록시에게 애정이 깊었어요. 그런데도 벨마를 하라고 해서 펑펑 울었어요. 그때 서른아홉이었는데”

10여 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 받은 충격은 여전히 생생해 보였다. 그때는 벨마가 루저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곧 받아들였어요. 벨마는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아요. 이중성 있네요 저는 여기에 에너지 넘치고 카리스마 있는 저만의 벨마를 창조했습니다.”

벨마 역의 장점은 무대가 열리자마자 등장한다는 점이다. 관능적인 춤과 함께 유명한 올댓 재즈(All That Jazz)를 부르면서 인생을 재즈라고 해요. 저를 보면서 관객들이 함께 호흡을 맞추고 숨을 쉬게 하는 게 포인트예요.”

극중 여성 죄수들이 원하는 것은 정작 무죄방면이 아니다. 이들은 대중의 관심을 끌어 스타가 되기 바란다. 인기가 떨어지면 존재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절망한다. 배우인 저도 이 부분엔 공감해요. 그동안 제가 원했던 건 돈도 아니고 개런티도 아니고 결국 관객들과 교감하는 힘이었어요.

그는 ‘무대 공포증’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공연 직전에 심장이 뛰면서 설렘이 폭발한다고 한다. 「무대 공개」라고 해야 할 것인가.

저는 오디션에 강한 게 누가 저를 보면 밀고 당기기를 하거든요. 누군가가 저에게 집중을 해주면 조금 다른 에너지가 나옵니다.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물론 있죠. 하지만 단언컨대 저처럼 무대를 좋아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무대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은 그만큼 훈련량이 많다는 뜻이다. 가장 고참인 그는 가장 먼저 훈련장에 도착하고 가장 늦게 자리를 뜬다. 쉬는 틈틈이 윗몸 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를 한다. 50대의 몸인데도 군살 한 점 없이 매끈매끈하고 생기가 넘친다. 매일 30분씩 수영하고 1만 보 보 걷습니다. 술·담배 등 몸에 해로운 것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음식을 가리는군요. 공연할 때 제일 무서운 게 장 트러블이거든요 초록색 야채와 양배추, 고구마, 브로콜리를 쪄서 먹어요.”

무대에 선 지 32년의 일이다. 많은 후배들이 방학 지나면 한물 간다, 무대 떠난다라고 생각해요. 나이 먹는 게 무서워요. 하지만 저를 보고 힘을 얻었으면 합니다. 제가 50무대에 서고 또 60의 나이에 해낸다면 정선아, 아이비 등 후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나이가 들면서 따라오는 것은 완숙미와 노련미다. 예전에는 힘이 넘쳤는데 지금은 강약을 조절하고 있어요. 낭비가 적어졌어요. 30년 숙성한 와인의 맛이랄까. 이런 퀄리티와 깊은 맛을 관객들도 느껴볼 필요가 있잖아요. 해마다 업그레이드된 저를 꼭 만났으면 해요.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