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 70m 해저에서 발생한 수차례 폭발음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게 9월 26일이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보내는 가스관인 노스스트림 1호와 2호가 잇따라 발생한 사고다.
사고 원인을 놓고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다. 어쩌면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지도 몰라. 원인을 떠나 유럽의 천연가스 위기가 더욱 심각해진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EU 27개국의 에너지 대외 의존도는 2020년 기준 57.5%다. 원유와 천연가스, 석탄을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지만 EU 에너지총국의 수치를 보면 천연가스 비중은 25% 정도다.
최근 몇 년간 EU가 석탄발전과 원자력발전을 감축하는 대신 천연가스 비중을 늘린 데 따른 것이다. 대기오염이 심한 석탄이나 위험한 원자력 대신 값싸고 깨끗한 천연가스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겨울 수요를 기준으로 EU 27개국의 천연가스 하루 수요는 15억㎥ 정도다. 겨울을 5개월로 계산하면 2250억㎥다. 유럽 천연가스의 40%는 러시아에서 조달된다.
그러나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천연가스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다. 네덜란드 TTF 기준 천연가스 선물 가격을 기준으로 봐도 침공 당일에만 50% 상승한 TWh당 132.71유로를 기록했다. 이것이 8월 말에는 TWh당 300유로로 2배 이상 오른 상태다.
노스스트림 1, 2호 폭발 이후 EU는 천연가스를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LNG선에 대한 수요를 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22년 6월 말 기준 글로벌 LNG선은 총 696척이다. 이 중 80%는 장기 프로젝트에 묶여 있는 선박이다. 해운시황에 따라 단기에 운송시장에 투입할 수 없다는 얘기다. 용선 중개업체 포텐파트너스에 따르면 노스스트림 폭발사고 이후 대서양 노선에 투입 가능한 LNG 선박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LNG 운송은 천연가스 교역 방식과 비슷하다. 시장 경쟁 주문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먼저 확보할수록, 가격을 올릴수록 유리하다.
LNG 운송료 평가기관인 스파크 커머더티 보고서에 따르면 9월 중순 이후 LNG선의 하루 용선료는 10만달러로 올랐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24%나 오른 수치로 사상 최고치다.
기존 선박이 부족해 신조 LNG선 수요도 늘고 있다. LNG 선박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LNG 선박은 해상의 냉동 슈퍼카에 비유할 수 있다. 일단 LNG와 같은 특수선을 건조하려면 이중 선체 구조 등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천연가스는 영하 163도의 액체 상태로 보관해야 한다. 수증기의 증발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LNG선의 평균 건조기간은 3050개월이다. 시스템 기술 선박답게 가격도 17.4만㎥ 2중 선체 기준으로 1억8000만달러에서 2억3000만달러 사이다.
LNG 선박은 기술과 자본을 모두 갖춰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풍부한 건조 경험 등 조선소의 경쟁력도 중요하다. LNG 선박 건조 기술이 민간 조선업계 최고라는 것이다.
세계 조선업의 발전 과정을 보면 유럽 독주 시대에서 일본과 한국으로 옮겨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이 일본을 추월하기에 이른다. LNG선은 한국이 20년 만에 세계 최고로 오른 상태다.
올 들어 8월 말까지 전 세계에서 발주한 111척의 LNG선 주문 중 83척이 한국에 몰렸을 정도다.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조선 3사 기준으로 2026년 상반기까지 일감을 확보한 셈이다.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 시장을 호시탐 노리는 곳이 바로 중국이다. LNG조선 수주에서 중국은 111척의 주문량 중 28척을 획득했다. 중국 측에서 보면 사상 최대 수주 기록이다.
중국이 LNG 선박 수주를 처음 한 것이 2008년이다. 중국 선박그룹 산하 후동중화조선이 한국의 독점을 깬 장본인이다.
중국 1호 대형 LNG 선박을 건조했지만 2018년까지 주문을 받지 못하다가 2021년 LNG 선박 시장 점유율을 10%로 올린다. 지금은 수주 기준으로 25%로 올린 셈이다.
이 회사 외에도 (남조선이 올해 3월 아부다비 국가석유공사로부터 2척의 17.5만㎥급 LNG 선박을 주문받은 바 있다. 중국의 두 번째 LNG 선박 건조 기업으로 떠오른 것이다. 세 번째 주자는 대천중공업이다.
이들이 노리는 목표는 한국의 LNG 종주국 지위다. 국내 3대 선사의 LNG 선박 건조 능력은 세계 최고지만 장기간 적자를 보고 있다는 점을 노리고 있다.
대우조선의 올해 상반기 적자는 4억3400만달러이고 현대중공업도 적자 규모가 5억달러를 넘는다. 삼성중공업도 상반기 2억5000만달러 적자다.
채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20만명에 달했던 우리나라 조선산업 종사자 수는 크게 줄어든 상태다. 인력 감축 대상에는 숙련공도 많이 포함돼 있다.
대우조선은 9월 26일 한화그룹에 매각된 상태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밝힌 매각 이유는 업황 부진이다. 중국은 비용을 더욱 절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원자재와 부품 조달 능력과 인건비를 줄일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LNG 선박은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이른바 가장 어려운 기술은 인바(Invar)강의 용접과 생산 기술이다.
인바강은 스위스 과학자 샤를 기라우메가 1986년 발명한 합금이다. 가장 큰 특징은 열팽창계수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극한 온도에서 변형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안정성이 뛰어난 기술이다.
천연가스 중에 섞여 있는 수분과 산성 기체는 부식성이 있다. 또 장거리 운송을 위해서는 온도를 영하 163도 이하로 낮춰야 하고 600배로 압축해 액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저온에 강하게 부식을 막고 강한 압력에도 견딜 수 있는 재료는 인버강밖에 없는 셈이다.
용접 기술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두께 0.7mm의 인광강철은 물과 기름에 접촉할 경우 8시간 이내에 녹이 슬는다. 사람의 땀에 접촉해도 24시간 이내에 녹이 슬는다.
따라서 용접시 전용 양피장갑을 끼고 땀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4개의 액화천연가스 선실을 가진 LNG선을 만들려면 6개 농구장의 면적만큼 인포마강으로 용접해야 한다.
인제철의 길이만 130㎞이다. 물론 로봇 용접으로 90%를 완성한 뒤 나머지 10%만이 수작업을 거친다. 발주한 선주는 3면대라는 핵심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중국에 완제품을 구입해 조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LNG선 영역에서는 프랑스 GTT가 이 기술 특허를 가진 회사다. 40년간 핵심기술을 독점하고 있다. 중국이 이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수준까지 가면 LNG 선박 건조 시장의 판도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