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에 영화, 드라마를 즐기지 않는 편이다. 어렸을 때 가족과 극장에서 본 영화들이 모두 내 취향은 아니었고 영화에 몰입해 홍조가 번지거나 울어서 눈이 붕어 빠진 모습으로 상영관을 나서기가 싫었다. 드라마는 너무 길다. 16화 언제 다 봐? 며칠째 드라마를 보다 보면 내가 허구에 불과한 드라마에 너무 몰입하는 게 싫다.
그래도 심심할 때 시간을 보내기엔 넷플릭스만한 게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지난달 말 언니 계정의 넷플릭스를 찾아 <블랙 미러>를 발견했다. 언니가 언급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어디선가 들은 이름이었다. 별로라면 봐서는 안 된다고 클릭했다. 처음에는 충격이었지만 이를 대체 어떻게 끝낼지 궁금했고 시즌5 첫 영상 스트라이크 바이패스를 모두 보고 나서는 다음 영상이 궁금했다.
블랙 미러 시리즈를 아직 5개밖에 못 봤는데 일단은 되게 내 취향이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고를 때 행복하고 교훈적인 일이나 좌충우돌 이런 건 절대 빼본다. ‘블랙 미러’는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스토리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던지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배경의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결국은 <블랙 미러> 시리즈를 관통하는 큰 줄기로 모이는 것도 좋았다.
시즌 5는 에피소드 3개로 구성돼 있다. 뭘 먼저 봐도 상관없을 것 같아. 개인적으로 스미스필린 > 스트라이킹 바이패스 > 레이첼, 잭, 애슐리 투 순으로 추천한다.

눈부시게 발전한 첨단기술이지만 인간의 어두운 본능이 그 기술을 이용하면서 기이한 악몽이 시작된다.
아래는 감상하면서 생각한 건데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요.

일단 부모님과 함께 보는 것을 지양했으면 좋겠어. 다 지난 줄 알고 엄마한테 같이 보자고 권했는데 끝까지, 진짜 끝까지 장면이 나와서 괜히 다른 이야기 – 저 배경 CG일까? – 싶었다.
일단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가상현실에서는 모르는 사람과 섹스를 즐겨도 성병이나 원치 않는 임신 걱정이 없는데다 진짜 내가 아닌 게임 캐릭터이기 때문에 사생활이 지켜지기 때문에 그런 수요를 충분히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성애자가 동성 친구와 섹스를 할 수 있을까. 물론 가상현실 속에서는 남성 캐릭터와 여성 캐릭터였지만 그 안에 같은 성별의 10년지기 친구가 들어있다고 인지하는 것도 가능할까. 그것도 다시는 없도록 기분 좋게? 쉽지 않다.

‘블랙 미러’ 시리즈에서 본 것 중 가장 좋았던 에피소드.
경찰은 크리스가 돈, 질투, 분노 등의 이유로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학력 저소득자인 크리스는 동종업계 종사자인 스미다린 창업자에게 질투심을 가질 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빌리에게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 빌리가 만든 SNS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꿨고, 스미스잘린의 작은 날개짓으로 크리스가 어떻게 약혼자를 잃었을까.인질로 잡은 것에 대해 사과하고 물론 목숨을 위협한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하룻밤 가볍게 만난 여성의 소원을 마지막으로 들어주는 것까지 영화는 여러 장면에서 크리스가 여전히 선량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그는 다만 SNS가 사람의 모든 집중을 빼앗는 사회에서 운전 중 알림음에 무의식적으로 한눈을 판 평범한 사람인 것이다.끝까지 완벽했다. 칸타카미 예스 오브 포 유가 흐르고 알림이 울릴 때마다 스마트폰에 시선을 빼앗기는 우리의 모습이 나온다.

애슐리 얼굴이 좀 낯익어 목소리도 익숙해 마일리 사이러스였다. 개인적으로 이번 회는 그랬다. 다른 <블랙 미러> 시리즈 에피소드가 안긴 후두부의 저림이 거의 없었다. 디즈니 하이틴 영화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제목도 딱히 할 게 없어서 대충 만든 것 같다. 이건 부모님과 함께 봐도 돼.
블랙 미러 에피소드는 개운치 않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오르고 빈 팝콘 상자를 휴지통에 버리고 기지개를 켜는 속 시원한 기분이 아니다. 이대로는 이를 닦지 않고 잠자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생각을 바꾸게 한다. 완전한 선과 악의 대립구도가 아니라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문제를 던진다. 밝은 면만 카메라에 담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한국 사회를 파노라마 샷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좋았다. 넷플릭스를 잘 아시는 선생님들은 이미 보셨을 텐데… 추천합니다.